운명의 만남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3)

삐비비빅, 삐비비빅-.
"으응......" 침대 옆 협탁에 둔 시계가 요란한 게 울려댄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만 언제나... 아침은 힘들다. 자는 사이 습관적으로 꽁꽁 싸맨 이불을 부스럭 거리며 걷어내고는 귀에 박혀대는 알람을 끄고 길게 하품을 늘어뜨린다. 
 
'벌써 아침이라니... 싫다아~......'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그야 늘 아침에 하는 일이니. 어차피 가야 할 걸 나도 알고 있다. 늦는다면 허겁지겁 달려가야 하기에 나만 손해인 거다. 눈도 못 뜬 채 치약을 주욱 짜내 양치를 하며 점심 도시락을 생각해 보는데... 집에 계란이 남아 있던가...? 어제 저녁에 먹은 게 마지막이지 않았나? '끄응... 계란이 없으면 대체,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하지......' 점점 멍해지는 정신에 반복적인 칫솔질만 오가다 헉, 하며 입 안을 헹궈냈다.
 
아침에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지! 계단을 내려가 1층 부엌으로 가서는 냉장고를 뒤졌다. 역시나 계란은 어제가 마지막이었다. "하아~, 집 오는 길에 계란도 사야 하고... 또 뭐가 없으려나." 부모님은 출장이 잦으셔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유일한 누나(언니)가 있지만 간호사로 집에 있는 시간도 불규칙하고 아침에는 나보다 일찍 출근한다. '그나저나, 누나(언니)는 도시락은 챙겨 갔으려나? 집에 뭐가 별로 없는데.' 
 
내가 먹을 것도 마땅치 않은 거 보면 역시 대충 가져갔을 거다. 일단 집에 있는 몇 없는 반찬과 좋아하는 달걀 후리가케를 올려 간단히 챙겼다. 점심은 배 채우는 걸 목적으로 대충 때우고 장 보고 저녁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으면 되겠지. 작은 보자기를 덮어 가방에 챙기고는 어제 저녁 걸어둔 파란색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문단속을 하는데 옆집 사람도 나왔다. 금발 머리에 나와 같은 교복... 누구나 잘 알고 있는 'LIPxLIP'의 아이조라는 멤버이다. 새 학기 첫날, 뒷자리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두 사람에도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여기 집에서 오래 살았지... 아이돌이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지만. 인상도 조금 달랐던 거 같고...' 뭐가 됐든 옆집 사람과 마주쳤으니 고개를 슬쩍 숙여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시바사키 아이조
(찌리잇---.)
 
사쿠지이 치세이 
"으응......?"
 
'우와, 엄청나게 째려보잖아...' 매섭게 보던 옆집 사람은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는 관심 없다는 듯 휙 나를 지나쳐 갔다. 무안하다는 기분도 못 들 정도였다. 유명인이라 인사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 혹시... 미움받고 있는 건가.....?' 
 
사쿠지이 치세이
"........ 난 한 게 없는데?!"
 
두 집 사이는 그렇게 붙어있는 것도 아니며 조금은 거리가 있다. 저녁 늦게 노래를 부른다거나, 친구들을 시끄럽게 데려온다 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해봤자 가끔 뜬금없는 벌레의 등장에 아주 짧게 비명을 내지른 정도이다. 
 
'그 정도는 봐 달란 말이야......' 알 수 없지만 방금 전 그 눈빛은 고의였다. 경멸이 진심으로 담겨있었다. 왜 그러냐고 지나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용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잘못한 거 같은 기분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늦지 않게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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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늘 그렇게 수업을 듣고, 필기를 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학교가 끝났다. 아침에 챙겨간 점심 도시락은 부실했지만 나름대로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나를 그렇게 노려보고 간 옆집 사람은 그런 적 없다는 듯 다가오는 여학생들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굳이 계속 보고 있다 또 눈이 마주쳐 미움받을지도 모르니 가방을 챙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슬슬 아르바이트 가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 대충 먹은 점심에 일하다 배고파지는 건 아닌가 싶어 편의점이라도 들리는 게 좋으려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사쿠지이 치세이
"우......왓.....!!!!" 
 
발을 헛디뎠....다......!?!!! '이대로는 제대로 넘어지겠어....!!' 그렇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린 순간, 뒤에서 누군가 팔을 세게 붙잡아 끌었다. 그 덕분에 옆에 있는 난간을 붙잡아 대차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아아아아..... 큰일 날 뻔했다......." 진짜 죽을 뻔했네. 계단에서 구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앗차 싶어 뒤를 돌아 감사한 만큼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건... 그 옆집 사람이었다. 
 
사쿠지이 치세이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 어라?" 
 
시바사키 아이조
"너 말이야."
".........됐어. ...똑바로 걷기나 해."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아침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표정에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뭐지...' 붙잡아준 걸 봐선 그리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 한 번 더 내가 미움받고 있는 거 같다는 기운이 마음 한 구석을 쿡쿡 찔러댔다. 확실해졌다. 저 옆집 사람, 아니 시바사키 아이조는 날 좋아하지 않는 게 정말이었구나....!! 이유도 모른 채 미움받고 있다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려주면 좋을 텐데.' 
뭐 됐나. 
 
어차피 나를 금방 잊을 거다. 저 멀리서 공간을 채우는 엑스트라를 기억해 주는 무대회장 속 왕자님은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에 괜히 뒷목을 문질렀다. 팔을 올려 그제야 눈에 띈, 그 사람이 붙잡아 구겨진 교복 마이가 보여 소매 끝을 툭툭 잡아끌어당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실내화를 갈아 신고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사쿠지이 치세이
"안녕하세요 사장님! 으응? 오늘 어디 가세요?"
 
CD 가게 사장님
"치세이 왔구나~. 응, 오늘은 가볼 데가 있어서. 마감할 줄 알지? 퇴근시간 맞춰서 문단속만 좀 부탁할게."
 
사쿠지이 치세이 
"네!"
 
그렇게 사장님이 가시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일을 해나갔다. 'FT4 컴백했나 보네...' 유명 아이돌의 처음 보는 듯한 앨범이 가게 맨 앞에 밖에서도 잘 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었고 사장님께서 주문을 해두셔서 그런지 옆으로 잔뜩 쌓인 재고 상자가 눈에 보였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손님들이 많이 몰려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계산하기 바빴다. 퇴근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매대를 다시 채울 수 있었고 전기를 끄고 가게 밖으로 나가 문단속까지 꼼꼼하게 마쳤다. 
 
사쿠지이 치세이
"피곤하다......."
 
장을 보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노랫소리가 안 들리네.' 불은 켜져 있는 거 같은데 여기서는 전혀 노랫소리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뚫어져라 건너편 악기점 2층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들리려나? 어제같이...' 오늘은 수상하게 악기점을 기웃거리지 않고 건물 옆 길로 가보았지만 거기서도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부르지 않는 걸까나......' 이상하게 아쉬운 기분이 들어 구두코 끝을 바닥에 톡톡 부딪혔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라....  왜 듣고 싶어지는 걸까.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때, 그 사람의 노랫소리가 창문 틈 사이로 들려왔다.
 
사쿠지이 치세이
"아........" 
 
부른다. 어제와는 또 다른 곡. 어제는 이것보다 경쾌한 어쿠스틱 곡이었다. 오늘은 조금 차분한 곡에 기대고 있던 등을 슬슬 내려와 가방을 안고 쭈그려 앉았다. 본래 노래를 듣기는 해도 부르는 취미는 없었다. 없었던 거 같다. 어릴 적 기억은 거의 나지 않기에 사실은 잘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맞을 수도 있겠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밥먹듯이 오갔다 그만큼 학교를 가지 못 하는 날이 많아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하였고 지금처럼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이렇게 누군가의 노래를 들은 것도 오랜만이다. 노래를 생각하면 무언가 떠오를 듯 가슴속 응어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굴어대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늘 그랬기에 속으로 메이는 침묵을 삼키곤 모습을 드러낼 생각도 안 하는 궁금증을 다시 묻었다. '뭘까......이 기분.' 어차피 생각나지 않을게 분명해 다시 누군가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점점 노래가 끝나가는 듯했다. 
 
생각에 잠겨 중간 부분을 놓쳐버리고 말았지만, 듣고 있다 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은 어딘가 슬픈듯한 감정이 실려있었다. 여기 있는 내 존재를 알진 못하겠지만 이 답답한 마음을 함께해 주는 것만 같아 멋대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사람의 노랫소리는 나와 함께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저 슬퍼 보이는 목소리의 주인과는 난 함께해 주지 못했다. '고마운데... 어쩐지 미안하네.' .....문득, 나도 누군가의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